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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Review

겐지이야기 - 무라사키 시키부



겐지이야기. 어쩌다가 이 책을 읽게 되었을까?
처음 겐지이야기를 들은게 만화책에서였다. 맞나?? ㅎㅎ 평소 만화책을 자주 보는데 어떤 만화책에서 겐지계획(?)이라는 내용이 나와서 순간 호기심이 일었었는데 서점에서 우연히 겐지이야기라는 책을 보았다. 근데 헉!! 10권이다. 일단 펼쳐보는데 흔히 볼 수 없는 문체와 형식의 책이다.

겐지이야기는 11세기경 궁녀인 무라사키 시키부가 지은 책이다. 당시 궁중에서의 소설이라하면 직접 책을 보며 읽는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아마도 궁녀이겠지만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한다. 그래서 문체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쓰여진 언어가 고대 일본어이기 때문에 다시 현대 일본어로 옮겨졌고 그것이 다시 번역이 되어 나왔다. 그렇지만 지금은 안쓰이는 많은 단어나 문장등이 혹은 원문을 살리기 위해 고대일본어가 그대로 사용된 예가 많아서 그런것들이 책의 집중에 방해를 하였다. 또한 전혀 모르는 당시의 관직명이나 의복, 다른 많은 사물들의 이름들이 나온다. 이런 단어들은 책의 뒷편에 주석으로 나와있어 처음에는 일일이 찾아보는 귀찮음이 있었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런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보다는 전체적인 의미를 파악하며 흐름을 끊지않고 읽고나서 뒤에 주석을 훝어보는 식으로 하였다.

이 장편소설은 히카루 겐지라 불리는 한 인물과 그 자손들의 일생과 파란만장한 연애담을 그리고 있다. 이 당시의 상류층들은 여러가지 악기와 춤, 노래, 글씨등을 배우고 익혀 서로 뽐내기도 하며 생활 자체가 이런 풍류를 즐겼다. 여기서 이 풍류라 하면 이런 재기등도 있겠으나 여인들과의 하룻밤 또한 풍류라 하며 즐겼다.

살얼음 녹은
이른 봄의 연못
거울 같은 수면에
우리 두 사람의 행복한 모습
비쳐 있나니


한 점 얼룩 없이
투명한 연못 거울에
이 세상 끝까지 함께하자고
우리 두 사람
행복한 그림자가
비쳐 있으니

이 당시에는 저런 노래를 서로 주고받는것이 상류사회에서 일상이었는데 누군가가 노래를 불렀을 때 즉석에서 답가를 얼마나 잘 짓는가 또한 그의 지위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 시기의 여인들은 상류층의 여인들과 일반 평민들의 여인들의 생활 자체가 너무나 차이가 난다. 상류층의 여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외부인에게 얼굴뿐만 아니라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목소리도 들을수가 없었다. 그리고 가족이라 하더라도 아버지에게조차 함부로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대면을 할 때면 문을 사이에 두고 중간에 말을 전달하는 시녀를 두어 대면을 하고 친숙한 사이라 하더라도 발을 치고 서로 얘기를 나눴다. 정말 친숙한(서로 사랑하는 혹은 밤을 같이 보낸) 사이가 되면 한 방안에서 얘기를 나눈다. 그리고 그동안에도 주위에는 항상 시녀들이 대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 겐지는 천황의 아들이지만 어머니가 정부인이 아닌 후궁이고 외가쪽이 권력이 없는 관계로 황자로서의 지위를 받지 못하고 신하의 지위에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뒤에 가서는 그의 일족이 모든 권력을 휘두른다. 그리고 너무나 훌륭한 외모에 못하는게 없는 인물로 모두가 그를 칭송한다. 그런 인물이기에 겐지는 어렸을때부터 여자를 탐하는 풍류를 즐긴다. 그는 원하는것은 무엇이든지 무슨수를 써서라도 이루고야 마는 성미로 그가 원하는 여자는 꼭 가졌다. 그러던 중에 어떤 어린아이를 살짝 엿보게 되는데 그가 너무나 흠모하는 자신의 아버지의 후궁을 닮은 모습에 이 아이가 크면 반듯이 예쁜 여자로 자랄것이란 확신에 그 아이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서는 키운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10살이고 겐지도 18살이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결혼을 하게 된다. 그녀는 겐지의 정부인이 아닌 첩이지만 겐지가 평생을 가장 사랑한 사람으로 나온다. 

이 책을 보며 가장 적응이 안 된것이 여자관계였다. 이 시기의 부부라하면 정부인 이외에 첩을 두는것은 상류사회에서는 흔한 일이었는데 이 첩이라는 자리도 그 여자의 집안의 지위가 있어야 했다. 궁중에서나 집안에서 시중을 드는 시녀들 중에서도 관계를 가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여자들은 첩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또 남편이 있는 여인들하고도 관계를 맺는 것이 일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없는것도 아니었고 직계가족이 아니면 친지들과도 결혼을 하기도 했다. 또 남자아이와도 잠자리를 같이하는것이 흔한 일이었다. 
주인공 겐지는 자신이 흠모하던 아버지의 후궁과 관계를 가지고는 아들을 낳는다. 천황은 그 관계는 모르고 그저 자신의 아들인줄로만 알고, 나중에 이 아이가 다음 천황이 된다. 하지만 그런 겐지도 후에 자신의 여인이 다른 남자와의 관계에서 아이를 낳고 겐지 자신은 이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이는 일이 생기고야 만다.
겐지는 육조원이라는 대저택을 지어 자신의 여자들을 모두 불러들여 한 집안에서 생활하는데 가히 하렘이라 할 만하다. 

겐지이야기는 모두 54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뒤의 13첩은 겐지가 죽고 난 후의 그의 후세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그의 죽음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구름 저 너머로'라는 제목만 있고 내용이 없는 첩이 있는데 이 다음부터는 몇 년의 공백기를 거쳐 그의 자손들의 얘기이다. 현대 일본어로 옮긴이는 이 소설적 장치를 너무나 극찬한다. 이 당시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내용이 없어진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 제목만 있고 너무나 중요한 겐지의 죽음에 관한 내용이 없는 것 또한 나로서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소재인 겐지이야기를 어떻게 읽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호기심 때문이었으리라. 너무나 많은 사랑이 나오고 서로 사랑하고 하는데 이 사랑들이 현재의 사랑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일본의 고대소설이기에 너무나 일본적이고 생소하며 혼란이 오는 내용도 많았지만 그와 더불어 알게 된 것 또한 많았고 보는 내내 다음이 궁금하고 빠져지내며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