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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Review

경마장 가는 길 - 하일지


처음 책을 읽으면서 언제 본격적인 사건이 전개되어지나 하고 읽어나갔다. 그런데 100 페이지, 200 페이지가 지나가도록 처음과 같은 서술로 이어졌다. 어떻게 보면 별 사건없이 전개되는 잔잔한 일상같은 소설이기도 하지만 그 서술방식에 있어서 너무나 특이한 소설이었다.  이 책은 철저히 제 3자적 입장에서 서술되어지고 있다. 주인공인 R을 따라다니며 눈에 보이고 들리는 것만을 보여준다. 등장인물의 주변정보나 이전의 상황설명, 생각등은 하나도 없다. 장면전환 역시 주인공을 따라 이루어진다. 꼭 어떤 한 사내를 따라다니며 엿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보이는 것만을 서술하는 대신에 묘사는 너무나 철저하다.

내용은 주인공인 R이 5년이 넘는 유학생활을 끝내고 귀국해서 약 4개월 간의 기간동안의 일을 그리고 있다. 그는 귀국해서 프랑스에서 같이 동거를 하던 J를 만난다. 하지만 그녀는 프랑스에서와는 달리 태도가 변하였다. 그녀는 R을 반기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순간에는 마지못해서 만나는 그런 태도를 보인다. 좋아하며 웃다가도 금방 태도가 돌변하여 화를 내기도 하고 또는 울기도 한다. 어떤때는 R을 사랑한다 하지만 다음에 만날 때에는 사랑하지 않는다, 자신을 놓아달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이나 다른 정보를 주지 않아서 내용을 읽으면서도 그녀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이유를 알 수 없기는 R 또한 마찮가지다.

R은 집인 대구와 J가 있는 서울을 오가는데 자신은 외국에서 열심히 일하여 박사학위를 받아서 돌아왔는데 집에서도 그렇고 어디에서도 마음놓고 자신의 일을 할 공간이 없다며 한탄하고, 외국과 우리나라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서 당황하고 불평을 해댄다. 그리고 R은 현재의 부인과 이혼을 하려하지만 그녀는 절대 이혼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책의 두께가 있지만 읽는데 너무나 술술 넘어가서 금방 읽었다. 읽으면서 R과 J의 관계는 꼭 코메디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J의 행동이 이해가 안가는 것과 같이 R의 행동 역시 너무나 이기적이고, 때를 쓰는 아이같고 어이없기도 했다. 한번씩 R이 자신의 소설을 쓰는 것이 나오는데 처음 몇 줄만 쓰고는 그만두는데 그 제목이 경마장에서 생긴 일, 경마장은 네거리에서..., 경마장에는 지금... 등이다. 너무나 뜬금없이 내용 중간에 나오는데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특이한 형식의 소설인데 그것이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