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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책 속 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 김연수

 

 

사랑이 마땅히 받아야만 할 원금이라면, 이자는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겠지.

웃음소리, 자장가, 몸냄새, 쓰다듬기, 입맞춤 같은 것들.

- P.76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그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에 가닿을 수가 없죠. 그래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죠.

중요한 건 우리가 결코 이 날개를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날개는 꿈과 같은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안다는 것 역시 그와 같아요.

꿈과 같은 일이라 네 마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야 하나도 어렵지 않지만,

결국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방법은 없습니다.

그럼 날개는 왜 존재하는 것인가?

그 이유를 잘 알아야만 합니다.

날개는 우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날개가 없었다면, 하늘을 난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테니까요.

하늘을 날 수 없다는 생각도 못했을 테지요.

- P.274~275

 

난 최선을 다할 거야.

그건 그날 새벽, 조선소 사장에게 부탁하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양관으로 달려가면서

지은이 수없이 읇조렸던 말이라는 걸 이제 우리는 알게 됐다.

그 말을 생각하면 우리라는 존재는 한없이 하찮아진다.

한 소녀가 최선을 다하기 위해 어둠 속을 달리던 그 새벽에 우리는 숙면에 빠져 있었으니까.

깨어난 뒤에야 우리는 거기에 붉은 불길과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 불길은 우리를 태우지 못했고 그 연기는 우리를 질식시키지 못했다.

거기 고통과 슬픔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 아이의 고통과 슬픔이었다.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은 고통스럽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다.

우리와 그 아이의 사이에는 심연이 있고, 고통과 슬픔은 온전하게 그 심연을 건너오지 못했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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