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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평전 中 법정풍경 #2

 

 

판사 : 피고에게 기회를 준 것은 기소 사실에 대해 진술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치소견…….

 문 목사 : 저는 국가보안법을 추가적용해달라고 얘기하는 중입니다. 더욱이 오늘로 공판이 끝납니다. 공판을 계속한다면야 최후진술 기회라도 있겠지만…….

 판사 : 정치소견을 밝히는 자리가 아닙니다. (협조를 구하듯 변호사석을 바라보나 변호사들은 외면하고 문 목사를 바라본다.)

 문 목사 : 보안법을 추가적용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자격도 없습니까?

 판사 : (다시 변호사들을 보면서) 잠시 휴정할 테니 변호사와 의논해서 간략하게 해주십시오. 10분간 휴정합니다. (장내 정리에게) 방청석 통로에 앉지 못하게 하십시오. (좌석이 부족해 뒤에 입장한 방청객들은 좌우 통로에 앉아 있었다.)

 (문 목사 피고인석에서 일어나 방청석으로 돌아서자 방청객들 모두 일어나 환호하며 박수를 보낸다. 문 목사는 입정할 때와 같이 손을 들어 웃으며 답례한다. 11시 5분. 박형규, 허병섭, 김승균, 김병걸, 이철, 설훈, 김민석의 어머니 등이 보인다. 김영삼은 문 목사 어머니께 가서 손을 잡으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방청석 뒤쪽에서 구속 학생 어머니들 <타는 목마름으로>를 합창하자 장내 정리들 제지한다. 김영삼은 퇴정. 11시 10분. 판사 입정. 문 목사 입정할 때 다시 환호와 박수.)

 문 목사 : 생산시설 공유화문제는 거의 끝났고, 민중봉기 얘기만 하면 됩니다. 저도 빨리 끝내고 집에 돌아가 점심 먹겠습니다. (방청석, 변호사, 판사, 검사 모두 잠깐 웃는다.)

 민통련의 최대 과제는 민주화와 민족통일입니다. 이것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이는 선후 문제가 아니고 하나입니다. 이것을 이 자리에서 길게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아무튼 이는 민통련의 통일철학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민주헌법쟁취위원회를 구성할 때 민주헌법의 조건으로 첫째, 대통령직선제, 실제 권력구조 문제가 결정적인 주요 사항은 아닙니다. 박정희도 민주헌법으로 독재를 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대통령직선제는 2·12총선에 나타난 국민의 총의이다, 신민당, 민한당, 국민당이 직선제를 내걸고 70퍼센트 이상의 표를 얻었으니 이는 국론이다, 따라서 이의를 달 수 없습니다. 둘째, 인권이 철저하게 보장된 민주헌법, 셋째, 통일지향적인 헌법입니다. 후에 신민당이 개헌현판식 추진을 결정하면서 낸 성명서를 보니 우리와 같았습니다. 참 기뻤습니다. 장기표 씨는 정책위 실장으로서 위에 3개 강령 위에 민주적 민족통일을 놓고 생산수단 문제를 언급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 문제는 많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공청회도 갖고 해서 국론으로 결론을 내려야 할 문제입니다. 민통련 내부도 거르고 국론으로까지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유화의 내용은 아직 토론도 못해본 것입니다. 후에 알고 보니 사유재산의 제한이라는데, 그런 것 갖고 평양 지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제5공화국에는 사유재산의 제한이 없습니까? 저는 그래요. 검찰이 기소유지가 안 될 줄 알면서도 기소한 것이라고 봐요. (방청석, 변호사 가볍게 웃고, 검사들도 미소 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소하는 것은 민통련을 깨고, 평양 지향적이라고 해서 국민과 민통련을 유리시키려는 음흉한 저의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다음은 민중봉기 얘기인데, 민통련의 원래 강령은 민중궐기론입니다. 이것도 상당한 토론을 거쳐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저는 정부가 국민의 압력 없이 민주개헌을 할 것이라고는 추호도 믿지 않습니다. 정부에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2·12총선 이후 국민이 뜻에 따라 궤도수정을 착실히 했으면 용서도 받고 임기도 채우고, 평화적 정권교체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국민의 확실한 의사표현에 이 정권은 당황했고,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권이 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때려 누르려는 발악상태가 되었습니다. 학원안정법은 학원뿐 아니라 국민 모두를 잡으려 했던 법입니다. 그건 상정도 안 됐는데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새파랗게 살아 있습니다. 그것은 학원을 때려잡고 민통련을 부수려 하고 있습니다. 현 정권은 민주화 의사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민중의 힘으로 압력을 가해 받아들이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민중궐기입니다. 방법으로는 서명운동, 대중 집회 등이 있습니다. 이것은 신민당과 같습니다. 민중궐기의 시작은 신민당에서 했습니다. 부산을 시발로 광주에서도 가졌습니다. 민통련은 원래 좀 느립니다. 24개 단체의 합의가 필요하므로 늦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산, 광주를 보고 대구에서부터 참여했습니다. 그래 광주, 대구의 민통련 단체의 간부는 모두 수배, 구속됐습니다. 원래 대전대회는 제가 축사를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4·19와 겹쳐서 못 갔고, 청주에서는 계 선생이 축사를 했습니다. 그 다음이 인천입니다. 인천대회를 민중봉기로 유도하려 했다고 하는데, 설사 그렇다고 해도 유죄가 될 수는 없습니다. 밑통련은 신민당 현판식 참가 후에 별도 시민대회를 갖기로 하고 저는 2시에 서울을 출발해 3시에 도착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민당 현판식을 시작도 하기 전에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민중을 공격했습니다. 그 다음날 ABC TV와 인터뷰를 했는데 기자한테 영어로 물었습니다. "Who made the first move?", "Police." 간단하게 답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했다 해도 무리가 됩니다. 물론 한 것은 아니지만. 또 인천대회에서 우리는 개헌을 요구했고, 정부는 호헌이라고 했었는데 이제 정부도 임기 내 개헌으로 후퇴했으니 우리는 무죄가 됩니다. 이렇게 신민당대회 후에 시민대회를 가지려 했는데 신민당도 못 하게 하니 민중궐기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한 걸음 더 전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자기의 책임상 토론에 붙이기 위해 제안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정부가 민주헌법 제정 의사가 있다면 왜 국민이 궐기를 합니까. 저는 교도소 체질이라 (방청석에서 웃는다) 즐기는 편이지만 좋은 것은 아닙니다. 정부가 민주화 의사가 있으면 왜 민중이 궐기를 해요? 미쳤어요? (방청석에서 "옳소!" 하는 소리와 함께 크게 박수친다.) 정책위 실장으로 제안한 것입니다. 이 정부가 의회정치를 통해 민주화할 것인가? (단어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끊어) 이 정부는 의회정치를 통해 민주화할 의사가 추호도 없습니다. 그 증거로 드러난 것을 보면, 첫째, 작년 국가예산통과 과정입니다. 한 가정의 예산문제도 식구들이 모여 앉아 종일 의논해야 하는데, 하물며 국가예산을 뚝딱, 몇 분 동안에 해치울 수 있습니까? (차츰 소리가 높아진다.) 그리고 그것을 항의하는 신민당 의원을 기소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의회민주주의의 부정, 압살 정도가 아니라 반란행위입니다. ("옳소!"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 소리) 그것을 보면서 저는 이 정부가 민주주의를 할 의사가 있느냐? 분명히 알았습니다. (다시 차분하게 시작하나 고문문제에서 보기 드물게 흥분된다.) 둘째, 얼마 전에 정신보건법 상정했다는 소식 듣고 놀랐습니다. 소련이 정치범들을 잡아 정신병원에 평생을 가두어두는 것을 여기에서 하겠다는 겁니까? 지금 감옥마다 아우성입니다. 내 이번이 네번째지만 이건 감옥이 아니고 고문장입니다. 학생들이 똥을 싸고 있어요. (방청석에는 학생 어머니들 웅성거린다.) 이걸 보면서, 나라를 비민주, 반민주가 아니라 야만국으로 끌고 가는데 젊은이들이 민중궐기에 만족 못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민중봉기를 검토할 단계에 분명히 와 있습니다. 또 정부는 민주화를 위한 최소한의 성의, 즉 구속과 석방문제도 보이지 않았고, 민주화 문을 여는 열쇠는 언론인데 개헌하기 전에도 얼마든지 개정이 가능한 언론기본법을 고치지 않는 것은 분면히 민주화 의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정부가 임기 내 개헌을 밝힐 때 궐기를 안 해도 될지 모른다, 얘기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내놓은 제도가 대통령직선제가 아니라 (역시 또박또박 강조한다) 국무총리 독재제입니다. (방청석에서 "맞습니다!"소리) 어떻게 정부의 민주화 공약을 믿습니까? 그러므로 분명 민중궐기를 봉기로 바꾸는 문제를 검토해야 할 단계입니다. 그러나 제 개인 생각으로는 아직도 궐기로 해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물론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민주화헌법이 제정되면 궐기나 봉기는 없어도 됩니다. 다시 말해 봉기도 궐기도 정부의 태도에 달렸습니다. 정말 정부도 더 이상 나라 사랑하는 학생들을 감옥에 넣는 욕된 일은 안 해도 됩니다.

 신광호 검사님, 이러한 의미에서 저는 장기표의 운동론에 이의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국가보안법을 제게도 추가적용해주어야겠습니다.

 이제 얘기 끝났습니다. 제 개인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별이 넷입니다. 처음 1920년대 간도 대토벌 때 독립신문 기자로 활동하다가 구속되었고, 해방 직전에는 일제에 잡혀서 청진 땅굴에서 살아나오셨습니다. 물이 질퍽한 곳에 담요 한 장 달랑 주었으니 죽으라는 것이었죠. 밤중에 세 번 끌려나오셨답니다. 밤에 끌려나오는 것은 총살이죠. 그런데 그때마다 폭격이 와서 살아나셨고, 마지막은 소련 사람에게 잡혀 당시 한인사회에서 저명한 사람 15명을 잡아서 소련으로 데려가는데 아버님만 남으셨답니다. 어머님은 그때 건물 앞뜰에 나가서 시체 하나하나를 들추며 아버님을 찾았고, 안 계시자 소련으로 간 줄 알고 집에 오셔서 실신했는데 아버님이 수척한 모습으로 나타나신 겁니다. 제 아버님의 염원은 민족통일이었습니다. 병석에서 헛소리 하실 때도 통일을 중얼거리시다가 가셨습니다. 제가, 부덕한 제가, 병구완을 해 드리는데, 하루는 '네가 나를 살리려고 애쓴다만 이제는 틀렸다. 힘이 있을 때 실컷 뛰어라' 그래 실컷 뛰다가 들어왔습니다. 저는 효도를 했습니다. 아버지 유언 따라 뛰다가 들어왔습니다. (방청석 여기저기에서 '허!' 하는 탄식소리가 들린다.) 지금 저는 병사 1층 9호실에 있습니다. 혼자지만 부모님과 같이 있습니다. 그래 요즈음은 부모님과 대화하는 시를 많이 짓습니다. 언젠가 저의 집에 젊은이들이 찾아와서 "목사님, 이제는 감옥에 가지 마십시오" 하기에 "나도 가기 싫어!" 했더니 옆에 어머님이 계시다가 "그게 무슨 소리야? 갈 일이 있으면 가야지. 항상 준비해야지" 하셔서 준비하고 있다가 들어왔습니다. 저는 노부모님의 격려를 받고 있습니다. 감옥에 오가는 것을 효도로 알고 있습니다. 아주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천여 명 양심수들과 같이 있는 것이 기쁩니다. 그들을 남기고 나오는 것은 송곳방석에 앉는 것입니다. 그러니 국가보안법을 추가적용해서 언도해주십시오. 마음대로 구형하고 마음대로 언도하십시오. 그러나 저는 사법부가 인권의 보루가 되는 것을 보고 죽을 겁니다. 죽어서 뼈가 가루가 되더라도, 죽어서라도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가 민주화가 되는 것을 보고 죽을 겁니다.

 (문 목사 진술을 끝내고 일어나자 방청석에서는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는데 옆에 앉아 있던 교도관 두 명이 밖으로 나가려는 문 목사를 만류하여 도로 앉힌다. 판사가 무엇인가를 변호인과 문 목사에게 질문한다. 박수도 그치고 조용해지나 판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목소리까지 낮기 때문이다. 그 중에)

 문 목사 : 연기할 필요 없습니다. 안 받을 거니까.

 (문 목사의 말로 미루어보아, 재판 거부로 공판을 진행할 수 없자 판사가 공판 연기를 의논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판사 : (계속 조용한 소리로) 다음 공판은 10월 14일 오전 10시입니다.

 1차 공판이 끝났다. 11시 42분. 문 목사는 밝게 웃으며, 손을 들어 방청석에 인사하고, 방청석에서는 박수로 보낸다. 박형규 목사가 출구 쪽으로 나가 교도관들의 만류를 제치고 문 목사와 악수한다. 김병오 민추협 부간사장도 다가가 악수한다. "며칠 전에 안양에서 나왔습니다"라는 말을 건넨다. 방청석에 있는 사람들은 학생 부모들의 선창으로 <선봉에 서서>, <흔들이지 않게>를 합창한다. 언제 준비했는지 머리에는 '구속자 석방하라' '소내 폭행 중단하라'는 구호가 적힌 흰 머리띠들을 하나씩 이마에 둘러매었다. 누군가 "군사독재 타도하자!"고 외치면 모두들 오른손을 높게 쳐들며 "타도하자!"를 두 번 따라 외친다. "전두환 몰아내자!", "문귀동을 찾아내어 죽이자!", "폭력구치소 박살내자!" 여러 구호가 연속적으로 터져나온다. 방청객들 퇴정 완료했다. 11시 50분.

 밖에는 학생 부모를 중심으로 계훈제, 박용길, 김승균 등도 앉아 이미 농성이 시작되었다. 구호와 노래가 번갈아 계속된다. 학생 부모들은 최근 서대문구치소 내에서 있었던 폭행사건이 제일 가슴 아프다. 12시 5분, 호송차 한 대가 도착했으나 농성자들이 비켜주지 않아 되돌아간다. 12시 25분, 법원관계자인 듯한 사람이 해산을 종용한다. 계훈제에게 끈질기게 요구하나 거절한다. 12시 50분, 학생부모 대표의 요청으로 김병오가 인사말을 한다. "여러분 걱정이 많으시겠으나 학생들은 공부 열심히 하면서 잘 지내고 있으니 용기를 잃지 마세요." 계훈제가 '여러분의 고생은 분단 때문이니 분단독재를 물리치자'는 요지의 말을 하고, 박용길이 "여러분들 뜻은 충분히 전달했다고 본다. 2시에 학생 재판이 또 있으니 만세 3창을 하고 해산하자"고 하자 모두 동의하고 일어선다. 민주주의 만세! 만세! 만세! 민족통일 만세! 만세! 만세! (작성자 : 문성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