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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책 속 글

페스트 - 알베르 카뮈

 

 

어떤 한 도시를 아는 편리한 방법은

거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 P. 16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말한다.

"오래 가지는 않겠지.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야."

전쟁이라는 것은 필경 너무나 어리석은 짓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법도 없는 것이다.

어리석음은 언제나 악착 같은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늘 자기 생각만 하고 있지 않는다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시민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네들 생각만 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휴머니스트들이었다.

즉 그들은 재앙의 존재를 믿지 않고 있었다.

재앙이란 인간의 척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앙이 비현실적인 것이고 지나가는 악몽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재앙이 항상 지나가버리는 것은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을 거듭하는 가운데 지나가버리는 쪽은 사람들,

그것도 첫째로 휴머니스트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들이 딴 사람들보다 잘못이 더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겸손할 줄을 몰랐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자기에게는 아직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재앙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추측하게 된 것이었다.

그들은 사업을 계속했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고 제각기 의견을 지니고 있었다.

미래라든가 장소 이동이라든가 토론 같은 것을 금지시켜버리는 페스트를

어떻게 그들이 생각인들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고 있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 P.60~61

 

만약 어떤 전능한 신을 믿는다면 자기는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것을 그만두고

그런 수고는 신에게 맡겨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심지어는 신을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파늘루까지도,

그런 식으로 신을 믿는 이는 없는데,

그 이유는 전적으로 자기를 포기하고 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며,

적어도 그 점에 있어서는 리유 자신도 이미 창조되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거부하며 투쟁함으로써

진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P.176

 

'아마 내 생각엔' 이렇게 타루는 적어놓고 있었다.

그는 하늘과 도시의 벽 사이에 갇혀 있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서 그는 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 그건 그리 무서운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싶었으리라.

"저들이 하는 소리가 들리시죠." 이렇게 그는 나에게 강조하는 것이었다.

"페스트가 가고 나면 이걸 해야지. 페스트가 가고 나면 저걸 해야지 하는 소리 말입니다……

저들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자신들의 생활을 망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저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 있거든요.

아, 그래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어요, 내가 체포되고 나면 이런 것을 하겠다고요?

체포는 하나의 시작이지 끝이 아닙니다.

반면에 페스트는…… 내 생각을 말할까요?

저들은 그냥 일이 되어가는 대로 가만 놓아두지 않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에요.

그리고 내가 말하는 것엔 다 근거가 있어요."

- P.266~267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서 내가 알게 된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사람들조차도, 오늘날의 모든 논리 자체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을 죽게하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

몸 한번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여전히 부끄러웠으며,

우리들은 모두가 페스트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오늘날도 그 평화를 되찾아서,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그 누구에게도 치명적인 원수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나는 다만, 이제 다시는 페스트에 전염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것만이 우리들로 하여금 평화를 되찾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평화가 아니라면 적어도 떳떳한 죽음을 바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며,

비록 인간을 구원해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그들에게 되도록 해를 덜 끼치며,

때로는 약간의 선까지 행하도록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좋은 이유에서건 나쁜 이유에서건

사람을 죽게 만들거나 또는 죽게 하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모든 걸 거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또한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이번 이 유행병에서 배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있다면 당신들 편에 서서 그 병과 싸워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그렇습니다, 리유. 아시다시피 나는 인생 만사를 다 알고 있지요),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피고 있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리유.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더욱 더 피곤한 일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피곤해 보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누구나가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니까요.

그러나 페스트 환자 노릇을 그만 하려고 애쓰는 몇몇 사람들이,

죽음 이외에는 그들을 해방시켜 줄 것 같지 않은 극도의 피로를 체험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가 이 세상에 대해서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

죽이는 것을 단념한 그 순간부터 나는 결정적인 추방을 선고받은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들입니다.

나는 또한 내가 그 사람들을 표면적으로 비판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이성적인 살인자가 될 자질이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그것은 우월성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본래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기로 했고 겸손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다만 나는 지상에 재앙과 희생자들이 있으니 가능한 한은

재앙의 편을 들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말하렵니다.

아마 좀 단순하다고 보실지도 모릅니다.

단순한지 어떤지 나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너무 여러 가지 이론들을 들어서 머리가 돌아버릴 뻔했고

그 이론들 때문에 실제로 다른 사람들은 살인 행위에 동의할 정도로 머리가 돌아버렸어요.

그래서 나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들이 정확한 언어를 쓰지 않는데서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도를 걸어가기 위하여 정확하게 말하고 행동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따라서 나는 재앙과 희생자가 있다고만 말할 뿐, 그 이상은 더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록 내 자신이 재앙 그 자체가 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그것에 동조하지는 않을 겁니다.

나는 차라리 죄 없는 살인자가 되길 바랍니다.

보시다시피 이건 그리 큰 야심은 아닙니다.

물론 제3의 카테고리, 즉 진정한 의사로서의 카테고리가 필요하겠지만,

그러나 이런 것은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더구나 그것은 아마도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느 경우에는 희생자들 편에 서서 그 피해를 되도록 줄이기로 마음먹는 것입니다.

희생자들 가운데서 나는 적어도 어떻게 하면 제3의 카테고리,

즉 마음의 평화에 도달할 수 있는가를 탐구할 수는 있습니다.

- P.337~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