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 김연수 "……천애지각이란 단어도 있습디다. 뭔 뜻인지 압니까, 천애지각?" "내가 국어선생이가. 그걸 우째 알겄나." "하늘의 끝 땅의 귀퉁이라 카는 뜻입디다. 천애지각이라 카는 거는 꼭 우리 같은 사람한테 쓰는 말입니다. 우리가 꼭 그 천애지각을 걸어가고 있다 아입니까. 게이코도 어데 이런 길을 걸어가고 있는거 아이겠습니까? 우리맨치로 말입니다." - P. 39 태식은 걸음을 멈추고 서서 뒤를 돌아다봤다. 태식이 걸어온 길이 눈송이에 지워지고 있었다. 눈송이가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모양을 보니 약간은 허무한 마음도, 또 약간은 무기력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왜 그렇게 편안한 것인지 태식은 알 수 없었다. 하늘에도 눈, 땅에도 눈이니 눈송이가 그만 하늘과 땅의 경계를 지워버린 셈이었다. 태식은 .. 더보기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8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