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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책 속 글

슬픈 짐승 - 모니카 마론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젊었을 때는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 너무나 많은 젊음, 너무나 많은 시작이 있었으므로

끝이란 것은 좀처럼 가늠이 안 되는 것이었고

또 아름답게만 생각되었다.

서서히 몰락해가는 것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것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지금 나는 백 살이다. 그리고 아직 살아 있다.

- P.9

 

나의 마지막 연인, 그 남자 때문에 나는 세상을 등졌다.

나를 떠났을 때 그는 안경을 잊고 내 집에 두고 갔다.

나는 몇 년 동안 그의 안경을 썼다.

건강하던 내 눈을 그의 근시와 뒤섞어 흐릿한 눈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그의 곁에 머물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이었다.

- P.10~11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잊고 싶은 것을 기억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왜 많은 사람들이 체험할 가치조차 없었던 사소한 사건들을 기억 속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는

마치 사용된 인생의 증거로서 쓸모가 있다는 듯 백 번도 넘게 다시 그것을 뒤져 보여주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다.

내 인생에는 잊히지 않아야 할 것들이 많지 않았다.

간직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만 모으면 내 인생은 상당히 짧은 생이 되었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아직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던 사십 년 전이나 오십 년 전에는 망각이 죄악시되었다.

나는 그것을 당시에도 이해할 수 없었고 지금은 그것을 생명을 위협하는 횡포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큰 신체적 고통을 겪을 때는 기절만이 치명적인 쇼크나 평생 지속되는 충격을

막을 수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망각을 금지했듯이

사람들에게 기절을 금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잊지 않는다는 것과는 조금도 관계가 없다.

- P.15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밖에 없다.

- P.20

 

나는 인생에서 우리 자신을 인식할 수 없다는 생각과 타협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모습인지도 알지 못한다.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을 알고 있는 사진에서, 또는 영화에서 우리를 인식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누군가 우리를 보고 어떤 다른 사람과 닯았다고 주장할 때, 우리는 더이상 그 이유에 공감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우리 자식들을 다시 발견하지 못하고 우리 부모님 안에서 우리를 다시 찾지 못한다.

아직 내 외모에 관심이 있었던 그 당시에 나는 내가 회색 눈에 구부러진 코,

그리고 항상 너무 얇다고 생각하는 입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우연히 나 자신을 만났다면 나에 대해서 호감을 느꼈을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우리 자신의 사진들을

그렇게 열심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 사진들은 움직이는 우리,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거나 무언가에 몰두해 있는 우리,

두 눈을 감거나 심지어 자고 있는 우리, 어쨌든 가지런히 정돈된 기만적인 우리의 거울상과는 다른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보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와 우리의 상 사이의 생소함을 몇 초 동안 마법으로 나타나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 P.44~45

 

청춘의 사랑은 단순히 젊은 시절에 하는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다.

청춘의 사랑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견주어 잴 수 있을 어떤 것도

아직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유일하게 그 사랑 자체를 위해서 존해한다.

그것은 아직 실망을 극복할 필요도 없고 이전의 행복을 능가하지 않아도 되고,

그 무엇도 반박하거나 수정하거나 대체하지 않아도 된다.

- P.74~75

 

그러나 두 가지 중에서 재빨리 한 가지를 결정했어요.

그대를 차지하거나 아니면 죽는 것.

- P.109

 

순수한 감사의 시간은 사랑의 첫 단계이다. 어떤 사랑이나 그럴 것이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우리가 원했던, 또는 심지어 우리 안에 파묻혀 깨어나지 않은 채 숨어 있던 특성들이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리가 더불어 사는 데 익숙해 있던 다른 특성들을 몰아낸다.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인식하게 된다.

우리는 더 아름답고 더 부드럽고 현명하다. 우리는 우리의 소심함과 우리의 악의에서 구원된다.

우리는 가장 사악한 적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의 행복으로 모든 나무와 모든 거리와 모든 순간을 환하게 비추고

그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그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경탄한다.

우리는 하늘과 비와 바람과 우리 자신이 하나가 된 것처럼 느낀다.

우리는 마침내 이 세상에 속해 있고 또 마침내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 P.148